- 대상
- #전체
역사기행2
수안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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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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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원
- 제한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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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예약
- 예약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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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예약
- 예약필수
소개
충주 단호사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보물 제512호) 대웅전에 주존상으로 높이 1.3m로 고려시대 불상입니다. 나발과 육계가 알맞게 표현되었고 두 귀와 목은 길어 삼도가 굵고 뚜렸이 표현 되어 있습니다. 법의는 통견으로 두꺼운 편이며 단순하고 각진 층선으로 잘 나타나 있고 결가부좌한 다리에 나타난 옷 주름선은 수평으로 처리 되어있습니다. 단호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유형문화재 제69호). 현존 높이는 2.14m이며, 본래는 5층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3층까지의 탑신과 옥개석은 완전하며 상륜부에는 노반까지 잘 남아 있습니다. 소나무가 땅바닥에 굼실대는 용처럼 서 있고, 절을 뒤덮을 듯 우거진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절의 옛스러움을 더해줍니다. 경내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500여 년의 노송이 있는데, 높이는 8.5m이고 나무 둘레는 2.1m 입니다. 수안보로 가는 충주 우회도로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대로변에 있는 사찰입니다. 울창한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용처럼 굼실되는 소나무가 지나가는 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
임충민공 충렬사
사적 제189호로 본관은 평택. 자는 영백, 호는 고송. 충주달천 출생(평안도의 价川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음). 판서 임정의 7대손 입니다. 1618년(광해군 10) 아우 임사업 과 함께 무과에 합격,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출정을 자원해 정충신의 휘하로 들어가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 1등이 되고 가선대부에 올랐습니다. 임경업은 당시 친명반청의 사회분위기와 함께 우국충정에 뛰어난 충신이요 무장이었으나 가장 불행한 장수였습니다. 명성을 떨치면서도 한번도 청나라와 싸움다운 싸움을 해보지 못한 불운의 명장이었습니다. 심기원사건의 연루 및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남의 나라에 들어가서 국법을 어겼다는 죄를 뒤집어쓴 채 형리(刑吏)의 모진 매를 이기지 못해 마침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이 53세였으며 고향인 충주의 달천에 장사지냈습니다. 1697년(숙종 23) 12월 숙종의 특명으로 복관되었다. 충주의 충렬사(忠烈祠), 선천의 충민사(忠愍祠), 백마산성의 현충사(顯忠祠) 겸천(兼川)의 충렬사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임경업장군의 추련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0호 )장군이 애용하였다고 전해지는 보검으로 역사적, 기술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큰 유품이며 보검의 상태 또한 양호하여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도신에는 명문이 있어 문화재로서 지정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
수주팔봉
수주팔봉은 높이가 493m로 충북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야트막하지만 날카로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그 위세가 당당합니다. 수주팔봉은 정상에서 강기슭까지 달천 위에 여덟 개의 봉우리가 떠오른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송곳바위·중바위·칼바위 등 창검처럼 세워진 날카로운 바위들이 수직 절벽을 이루어 멋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부팔봉 일대는 옥천계 문주리층(담녹색녹이석편암)이 분포하는 곳에 풍화에 강한 암맥이 뚫고 들어간 곳이며 수안보면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오가천이 달천과 합하여지는 과정에서 심하게 곡류하면서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산줄기가 남은 것이고, 이후 다른 방향 구조선들에 의해 산줄기가 잘게 나누어지면서 여러 개의 봉우리로 분리됨으로써 달천의 맑은 물과 깎은 듯한 절벽을 안고 서 있는기암 계곡이 형성되어있습니다. |
충주 미륵대원지
미륵리 사지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꿈에 관세음보살로부터 석불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하늘재를 넘자마자 지세를 확인하고는 지금의 미륵리에 석불을 세워 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96 ).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며 석불이 있는 석굴 방형의 주실은 가로 9.8m, 세로 10.75m의 넓이이며 높이 6m의 석축을 큰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 불상을 봉안하였습니다. 오층석탑 (보물 95호) 높이 6m의 5층 석탑으로 그 자리에 있던 바위로 받침돌과 기단을 만든후 초층탑신석을 올려 놓았습니다. 8각석등(유형문화재 19호) .전형적인 8각 석등으로 균형이 잘 잡힌 우수한 석등입니다. 석조귀부 길이 6 m. 높이 1.8m.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거북모양의 비석 받침입니다. 귀갑문은 생략하였으며 좌측 어깨부분에 작은 거북 두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형태를 양각하였고 앞쪽의 발은 비교적 사실적으로표현하였으나 형식화 되었있습니다. |
하늘재
하늘재는 신라 아달라왕 3년 (서기 156)에 개통되어 처음에는 계립령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부터 하늘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을 맞대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신라 경순왕의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패망의 한을 품고 하늘재를 넘었다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하늘재 옛길(계립령로)은 충청도 충주와 경상도 문경 사이의 가장 낮은 고갯길로서 신라시대 초기 서기 15년(이달라니사금)에 개척된 유서깊은 옛길이며, 많은 전설과 유래가 깃들어 있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증보문헌비고, 문헌비고, 만기유람, 동국여지승람 등 다수의 참고문헌과 자료에 나타나고 있는 옛길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새재에 관방시설을 설치하고 인근의 다른 통행로를 폐쇄할 때, 하늘재 옛길도 패쇄되어 이미 오랫동안 행인의 왕래가 없어진 길아며, 지금도 충청북도 충주시 구간은 비포장도로로 남아있어 옛길의 정취를 잘 보존해 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늘재 옛길 주변에는 중원미륵사지 (사적 제 317호), 중원미륵리오층석탑(보물 제 95호), 중원미륵리석불입상(보물 제 96호)등 국가지정문화재와 다수의 시도유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가 있어 매우 풍부한 문화경관요소를 지니고 있는 옛길입니다. 현재 국립공원 측에서 역사자연관찰로로 지정하여 탐방객들에게 활용하고 있는 길로서, 하늘재 옜길은 우리 옛길의 특징을 매우 잘 갖추고 있는 길입니다. |
기본정보
- 주소
-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중앙탑길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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